가족

상처는 왜 대물림되는가

안임수 2025. 8. 11. 17:4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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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: 픽사베이

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사슬

 

1. 상처가 전해지는 이유

가정은 원래 사랑과 안전함을 주는 곳이어야 하지만,
때로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.
더 안타까운 건, 이 상처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
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.
심리학에서는 이를 **세대 간 전이(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)**라고 부릅니다.

이 과정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메커니즘이 있습니다.

 

  1. 학습된 관계 방식
    • 아이는 부모의 말투, 갈등 해결 방식, 감정 표현을 그대로 보고 배우며 성장합니다.
    • 사랑받는 방법뿐 아니라, 상처 주는 방법까지도 ‘이게 정상’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.
  2. 애착의 영향
    • 안정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
      성인이 되었을 때 관계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쉽게 느낍니다.
    • ‘사람은 결국 나를 떠날 거야’라는 무의식적 믿음이 생기면,
      가까운 관계일수록 불신과 공격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.
  3. 감정 처리 능력의 결핍
    •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게 미덕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
      분노·슬픔·두려움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.
    • 결국 위기 상황에서 폭발하거나, 반대로 모든 걸 회피하게 됩니다.

 

2. 구체적인 사례들

사례 1 — 폭력의 반복

중학교 시절, 민수(가명)는 술만 마시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.
그는 “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” 다짐했지만,
성인이 되어 결혼한 뒤 사소한 말다툼에서 아내를 밀치고 손찌검을 하게 됩니다.
민수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.
“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화를 내고 있구나.”
민수에게 폭력은 문제를 ‘해결하는 방식’으로 각인돼 있었던 겁니다.


사례 2 — 중독의 그림자

수진(가명)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했습니다.
어릴 적부터 집안엔 술병이 굴러다녔고, 술 취한 아버지와 불안한 어머니 사이에서 늘 눈치를 봤죠.
성인이 된 수진은 술 대신 ‘온라인 도박’에 빠졌습니다.
겉으로는 전혀 다른 중독처럼 보이지만, 본질은 같았습니다.
**“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패턴”**이 대물림된 것이죠.


사례 3 — 자살의 반복

한 청년은 10살 때 어머니를 자살로 잃었습니다.
그날 이후 그는 ‘죽음’을 위기 탈출구로 각인하며 살았습니다.
20대 중반,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같은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.
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,
그 과정에서 전문가에게서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.
“부모가 자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
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2~3배 높아요.”
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, 심리적 패턴의 전승이었습니다.


 

3. 상처의 사슬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

  • 자기 인식:
    ‘나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, 그것이 내 행동에 어떻게 스며 있는가’를 알아차리기
  • 건강한 모델 찾기:
    나에게 상처 준 방식이 아닌, 다른 관계 방식과 감정 표현법을 배우기
  • 전문가 도움:
    상담, 치료, 가족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행동 패턴을 몸에 익히기
  • 사회적 지원:
    위기 가정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재활 프로그램 마련

💡 참고 자료

  • Bowlby, J. (1988). A Secure Base: Parent-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. Basic Books.
  • 한국보건사회연구원(2021). 「아동기 경험과 성인기 삶의 질 관계 연구」
  • van IJzendoorn, M. H. (1995). "Adult attachment representations, parental responsiveness, and infant attachment: A meta-analysis." Psychological Bulletin, 117(3), 387–403.

 

마무리
상처는 숨기면 사라지지 않습니다.
오히려 이름 붙여서 꺼내야만, 다른 세대로 전해지지 않고 멈출 수 있습니다.
나를 위해서,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
“이 상처는 여기에서 끝난다”라는 결심이 필요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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