무너진 가정, 남겨진 아이
- 어린 나는 어떻게 살았나나는 늘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.
나는 늘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.
또래 친구들보다는 한참 나이 많은 언니들과 대화하는 게 더 편했다.
어린 나이에 어른스러운 말투, 어른스러운 표정,
그리고 어른처럼 조용하고 눈치 빠른 아이.
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물었다.
“너 왜 이렇게 조용해?”
“너 눈이 왜 이렇게 슬퍼?”
나는 대답하지 않았다.
내 눈이 슬퍼 보인다는 사실을
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.
그 슬픔은 집에서부터 따라왔다.
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지르는 날이면
엄마는 또 울고,
나는 또 조용히 웅크려야 했다.
어린 나는
홍수처럼 넘실대는 냇물에 양초를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.
비가 내리는 날에도 나는 기도했다.
“오늘은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고 집에 오게 해 주세요…”
어린 마음에
내 기도를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실까 싶어서
아주 날카로운 자갈 위에
무릎을 꿇고 기도한 날도 있었다.
내 고통을 보여드리면 하나님도 감동하지 않으실까 하는
애틋하고도 절실한 믿음이었다.
나는 그렇게
항상 어둡고 무거운 인생 속에서 ‘하루를 견디는 아이’로 살았다.
그 시절 나의 소원은 단순했다.
아버지가 술에 취하지 않고 돌아오는 것.
엄마가 맞지 않는 것.
그리고 누군가가 나를
“괜찮아, 너 참 잘 버텼다”라고 안아주는 것.
그런 삶을 살다가
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객지로 나와 독립했다.
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세상에서
나는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택했다.
일찍 철들었다는 말은 누구에게는 칭찬이지만
나에게는 살기 위한 무기였다.
20년이 지난 후,
중학교 만났는데,
“그때 너, 참 우울해 보였어.
그런데 지금은 많이 밝아졌네.”
학창 시절의 내 모습에 대해 말해 나는 웃었다.
나도 안다.
그때보다 지금이 더 살아 있고,
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다워졌다는 걸.
하지만 그 어두운 시절이 없었다면
나는 지금의 나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.
슬펐지만, 나는 그 어둠을 딛고 서서
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.
- 외로움과 생존
나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났다.
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고, 숨을 쉬고 싶었다.
하지만 떠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진 않았다.
어딘가로 가는 길에도,
식사를 마친 밤에도,
감기에 걸려 누워 있는 오후에도
늘 엄마 생각이 났다.
“엄마는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있을 텐데…”
“괜찮을까. 또 울고 있진 않을까.”
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그 집 안에 있었다.
나의 뿌리는 그곳이었다.
그 불행한 집,
상처투성이였지만 나의 시작이기도 했던 곳.
그렇게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.
밥을 챙기고, 일터에 나가고,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하고,
그러면서도 늘 어딘가 한편이비어 있었다.
그런 어느 날,
감기 몸살이 심하게 와서
고열에 시달리며 몇 날을 앓고 있었다.
정신이 흐려질 정도로 아팠던 그때,
전화가 울렸다.
"괜찮아? 잘 지내냐?"
…아버지였다.
너무 놀라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.
한 번도 연락한 적 없는 아버지,
나를 걱정한다고 말한 적 없던 그 사람.
나는 울음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.
“괜찮아요.”
그 짧은 대화가 끝나고
나는 조용히 울었다.
그날 처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.
"이런 게 가족일까?
멀리 있어도,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아프면 왠지 마음이 움직이는 것.
그런 게 피로 이어진 가족일까?"
나는 외로웠지만, 살고 싶었다.
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,
의미 있게, 단단하게 살아내고 싶었다.
어릴 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.
“나는 굵고 짧게 살 거야. 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 거야.”
그래서 나는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일했고,
힘든 사람들 곁에 있으려고 애썼다.
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늘 질문했다.
“이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?”
“나는 사람을 돕고 있는 걸까?”
“나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있을까?”
내 가정사는 어둡지만
나는 늘 의미 있는 방향으로 걷고 싶었다.
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.
- 나를 지켜준 작은 희망들
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.
“왜 그렇게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세요?”
나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.
정말 그들을 위해서일까,
아니면…
그 속에서 나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는 걸까?
“메시아 신드롬”이라는 말이 있다.
고통받는 사람을 보면
마치 내가 구원자가 되어야 할 것처럼 느끼는 감정.
어쩌면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다.
어릴 때 내가 지켜줄 수 없었던 엄마.
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, 나조차도 무력했던 그 상황들.
“내가 더 크고 강했다면 엄마를 지킬 수 있었을까?”
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.
그래서인지 누군가가 힘들어 보이면
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.
내가 겪었던 그 외로움을 그 사람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.
하지만 정작 나는 아직도 아픈 사람이다.
다 나은 것도, 강한 것도 아니다.
그래서 더 조심스럽다.
돕고 싶지만 내 마음이 무너질까 봐
용기 내어 다가가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.
그럴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.
“괜찮아.
네가 지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.
너는 그저 ‘함께 아파할 수 있는 사람’이야.
그걸로도 이미 충분해.”
사실 돌아보면
내 삶은 작은 희망들로 여기까지 버텨온 것 같다.
어디선가 들려온 찬송가 한 소절,
새벽에 펴놓은 성경의 문장 하나,
아이들이 웃으며 건네는 "선생님, 좋아해요."
지적장애인 시설에서 만난 세상 누구보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.
그 하나하나가 나를 붙들어준 희망의 불씨였다.
나는 누군가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,
적어도 함께 울어줄 수는 있다.
그리고 그 울음이
언젠가 그 사람의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.
나는 왜 살아남았는가_4 이야기로 이어집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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